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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몰입하다 건강 망가진 뒤에야 깨달은 것들

by 멘탈트레이너 2026. 5. 3.

한때 나는 ‘몰입’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라고 믿었다. 주변에서도 “요즘 진짜 열심히 산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스스로도 꽤 뿌듯했다. 하루 대부분을 일에 쏟아붓고, 쉬는 시간조차 생산적인 무언가로 채워야 안심이 됐다. 괜히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서, 일부러라도 뭔가를 더 하려고 했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 내 모습이 꽤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는 ‘열심히 살았다’기보다 ‘멈추는 법을 몰랐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문제는 그때는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채 계속 밀어붙이다 보니,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 자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하나씩 깨닫게 됐다. 이 글은 일에 몰입하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된, 아주 기본적이지만 그때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직접 겪고 나서야 이해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일에 몰입하다 건강 망가진 뒤에야 깨달은 것들
일에 몰입하다 건강 망가진 뒤에야 깨달은 것들

 

 

1. 몸은 생각보다 훨씬 먼저 무너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걸 ‘피곤함’ 정도로 가볍게 넘겼을 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잠드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는 정도였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잠을 줄였고, 대신 카페인으로 버티는 날이 늘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는 다들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야근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하루에 4~5시간 정도 자는 날도 많았다. 그 상태로도 일은 돌아갔기 때문에 더 위험했다. ‘버틸 수 있네?’라는 착각이 생겼고, 그게 기준이 되어버렸다. 주말에는 몰아서 자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막상 주말이 되면 늦잠을 자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몸이 쉬는 법을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침에 눈 뜨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됐다. 알람을 듣는 순간부터 피곤함이 밀려왔고,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친 상태였다. 커피를 마셔도 예전처럼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고, 집중도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분명 같은 일을 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사소한 실수도 잦아졌다. 몸의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한 날이 많아졌고, 두통이 거의 습관처럼 따라왔다. 특히 이유 없이 짜증이 나거나 감정이 예민해지는 순간들이 늘어났는데, 그때는 그게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몸이 지쳐서 감정까지 영향을 받은 건데, 그걸 전혀 연결해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회복이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하루 푹 자면 괜찮아졌는데, 그때는 쉬어도 계속 피곤했다. 그게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는 걸 그제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어느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평소처럼 책상 앞에 앉았는데, 집중이 아예 되지 않았고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 억지로 뭔가를 해보려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이건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내가 내 몸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무시하면서 ‘괜찮다’고만 반복하고 있었다. 건강 관리는 새로운 걸 더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보내지고 있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때 처음 제대로 이해했다.

 

2. ‘버티는 습관’이 나를 더 망가뜨리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버티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걸 스스로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런 태도 덕분에 맡은 일을 놓치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책임감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그 방식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이 몰리면 늘 같은 패턴이었다. 일단 참고, 어떻게든 마감은 맞추고, 끝나면 쉬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끝’이라는 건 잘 오지 않았다.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일이 이어졌고, 결국 쉬는 타이밍은 계속 밀렸다. 그걸 반복하면서도 나는 계속 ‘조금만 더 버티자’고 스스로를 밀어붙였다. 문제는 그게 습관이 됐다는 점이다. 힘들다는 감각이 둔해졌고, 쉬어야 할 타이밍을 아예 놓치게 됐다. 주변에서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이 정도도 못 버티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면 가장 큰 문제는 기준이 없었다는 거다. 어디까지가 적당한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없이 무조건 끝까지 가려고만 했다. 컨디션이 좋을 때와 안 좋을 때를 구분하지 않고 항상 같은 강도로 밀어붙였고, 그게 결국 무리가 됐다.

생활 습관도 엉망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식사를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날이 많았고, 수면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운동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시간 나면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시간은 거의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스스로를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건강이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버틴다는 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상황에 따라서는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일 수도 있다는 걸. 그 이후로는 ‘오늘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불안했다. 예전보다 덜 하는 것 같아서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고, 괜히 게으른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였다. 무리하지 않으니까 다음 날도 꾸준히 할 수 있었고, 전체적인 흐름이 훨씬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느냐였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이 기준 하나만으로도 생활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3. 건강은 잃고 나서야 중요해지는 게 아니라, 원래 가장 기본이었다

건강이 나빠지기 전까지는 솔직히 항상 뒤로 밀려 있었다. 일이 바쁘면 운동은 당연히 빠졌고, 식사는 대충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잠도 줄일 수 있는 자원처럼 생각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계속 우선순위를 미뤘다.

그때는 건강을 챙기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하면 더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그동안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집중이 안 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고, 컨디션이 들쭉날쭉해지니까 일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써도 효율은 떨어졌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건강이 무너지면 생산성도 같이 무너진다는 걸. 회복하는 과정도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며칠 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생활 습관을 하나씩 다시 잡아야 했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회복해야 했다. 예전처럼 한 번에 끌어올리는 방식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바뀐 건 ‘기준’이었다. 예전에는 일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컨디션이 기준이 됐다. 아무리 바빠도 수면 시간을 먼저 확보하려고 했고, 식사도 일정하게 챙기려고 노력했다. 운동도 선택이 아니라 기본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보다 덜 하는 것 같아서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훨씬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컨디션이 일정하니까 하루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유지됐다.

지금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건강은 나중에 챙기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 요소라는 걸. 그걸 무시한 채 달리면 결국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단순하다. 나처럼 뒤늦게 깨닫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빠르게 한 번쯤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결국 남는 건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버텨낸 나 자신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